“약이 되는 전통주 … 후손 건강 생각하는 조상 지혜 담겨” Life

‘대한민국 대표 주당’으로 불리는 허시명 씨는 10년 동안 좋은 술을 찾아 전국을 여행한 전통주 전문가다. [김수정 기자]

삼청동‘막걸리 학교’ 교장 허시명씨에게 듣는 전통주의 매력 ‘대한민국 대표 주당’으로 불리는 허시명 씨는 10년 동안 좋은 술을 찾아 전국을 여행한 전통주 전문가다. [김수정 기자]술의 세계는 무림의 세계와 비슷하다. 도처에 고수가 있다. 타고난 체질 덕분에 알코올 분해 능력이 뛰어난 이가 있고, 안주 없이 술을 들이켜도 취하지 않는 이도 있다. 이 중 ‘대한민국 대표 술꾼’으로 불리는 주당을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났다. 첫인상은 의외였다. 단정한 옷차림, 모범적인 말투와 행동거지. 서울대 국문학도 출신의 ‘막걸리 학교’ 교장 허시명(52)씨 얘기다.


그를 일컫는 말은 다양하다. 대한민국 제1호 술 평론가, 전통주 품평가, 막걸리 감별사,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등이다. 정부 관련 직함도 있다. 문화부 전통가양주실태조사사업 책임연구원, 농림수산식품부 전통주품평회 심사위원, 국세청 주류질인증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그가 처음부터 주당이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술에는 문외한이었다. 허씨는 “술 못 먹는 게 집안 내력”이라며 “아버지는 술 한 잔에 주무시고 형님은 쓰러진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가 술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 처음엔 여행작가라는 직업 때문에 술을 글의 소재 정도로만 여겼다. 즐길 줄을 몰랐다. 전국 1500여 곳 양조장 중 3분의 1 이상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찾은 전통주는 다양하다. 계란과 참기름이 들어가는 제주도의 보양주인 오합주, 한국 증류식 소주의 세계화를 꿈꾸는 광주요 그룹 조태권 회장의 화요, 황희의 후손 집안에서 빚고 있는 호산춘, 대표적인 약술 구기자주 등이다. 좋은 술을 찾아 나선 지 10년 만에 전통주의 매력에 빠져 애주가가 됐다.


전통 소주는 막힌 속 뚫는 귀한 약으로 쓰여

허씨는 영국 위스키·러시아 보드카 등 외국 술과 전통주의 차이를 ‘약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둔다. 우리나라는 집안마다 선조의 유산같이 전해오는 약주가 있다는 것. 허씨는 “가양주(집에서 빚는 술)에는 후손의 건강을 생각하는 조상의 뜻이 숨겨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가양주의 주재료가 되는 구기자·당귀·인삼·솔잎 등 초근목피는 고혈압·당뇨병 등 한 집안의 유전적인 결함을 보완해주는 약재로 쓰였다.

 전통주는 특히 효모와 효소가 풍부해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허씨는 “전통주에 살아 있는 효모와 효소에는 유기산·알데히드·에스테르 같은 물질이 풍부하고 비타민과 필수 아미노산의 함량도 높다”고 말했다. 특히 술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인 술지게미 속에는 식이 섬유가 풍부해 영양분의 보고로 여겨졌다.

 전통주는 노인을 봉양하기에도 좋은 술이다. 허씨는 “조선시대 유학자인 일두 정여창 선생은 막걸리처럼 탁하고 도수가 낮은 술을 가리켜 ‘노인의 젖’이라고 말했다”며 “전통 소주는 예전엔 가슴이 답답해 막힌 속을 뚫을 때 쓰이는 귀한 술이었다”고 말했다. 소주 2~3잔 등 적정량의 음주가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것. 하지만 허씨는 “약주라 해도 매일 많은 양을 마시는 것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희석식 소주보다 깔끔한 증류식 소주

허씨에게는 건강을 해치지 않고 술을 마시는 나름의 주도가 있다. 바로 술을 차(茶)처럼 마시는 것. 다도를 할 때처럼 술을 마실 때도 색을 먼저 보고, 향을 맡고 비로소 입에 댄다. 혀에 닿는 맛과 입안을 채우는 맛, 삼킨 뒤 머무는 맛을 구별해 느낀다. 벌컥벌컥 들이켜거나 폭탄주로 만들어 먹지 않는다. 술잔을 비우면 물로 입안을 헹군다. 입안에 잔류한 알코올을 헹궈내야 술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절로 물을 많이 먹게 돼 빨리 취하는 법이 없다. 이 때문에 허씨가 운영하는 ‘막걸리 학교’의 교칙도 ‘술 먹고 주정하면 퇴교 처리’다.

 허씨는 전통주 중에서도 ‘화요’에 애착이 있다. 화요는 증류식 전통 소주로, 흔히 알려진 희석식 소주와는 다르다. 1965년 정부에서 곡물로 소주를 만들지 못하게 하면서 원래 전통식 소주의 대명사인 증류식 소주가 사라졌다. 허씨는 “화요는 값싼 희석식 소주 시장에서 전통을 고수하는 자존심 강한 술”이라고 말했다. 허씨는 “화요는 경쾌하면서도 달큰한데 쓴맛이 있고, 살결 고운 소주”라고 표현했다. 일반 소주보다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는 이유는 첫째, 밀누룩 대신 100% 쌀로 만들기 때문이다. 쌀은 보리나 고구마와 달리 강렬한 향이 없어 순한 맛의 소주를 뽑아내는 데 으뜸이다. 둘째는 감압 증류법 때문이다. 감압 증류는 압력을 낮춘 상태에서 하는 증류법이다. 희석식 소주처럼 탄내가 나지 않고 술맛이 엷고 뒷맛이 가볍다. 허씨는 “전통 소주의 본령인 화요는 고급술로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 일본 미야자키 의과대학 미하라 교수는 증류식 소주가 혈전을 녹여 혈관이 막히는 것을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증류식 소주를 마신 사람은 마시지 않은 사람에 비해 혈전 용해 효소가 2배 이상 많이 나왔다.

 허씨는 전통주를 건강하게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 중이다. 조만간 ‘한국명주학교’도 문을 연다. 허씨는 “사케 테라피처럼 구기자주 테라피, 막걸리 테라피 등도 나올 수 있지 않겠느냐”라며 “누룩 속에서 효모를 추출해 화장품을 만들거나 술지게미를 활용해 건강 음료나 절임 가공 음식을 만드는 등의 시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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