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더 "독일, 정치 논리로 수도분할…국민들 나쁜 경험만" 포럼

[글로벌 인재포럼 2009]


힘센 부서는 대통령 따라가려 해…독일 본은 '베를린의 미끄럼틀'
나누면 과도한 비용ㆍ시간 낭비…의회ㆍ행정부는 한곳에 있어야


"독일도 한국처럼 정치논리에 밀려 수도를 분할했다. 국가적 필요나 자연 발생적이 아닌 정치논리로 수도를 분할해 놓고 보니 행정 비효율과 예산 낭비 등 많은 부작용이 생겼다. 국민들도 나쁜 경험만 갖게 돼 지금은 전국적으로 수도 통합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4일 한국의 세종시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치논리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한국과 독일은 출발점이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각국의 문제는 각자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뗀 뒤 "한국은 이미 행정수도 분리를 경험한 독일의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고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슈뢰더 전 총리는 수도 분할의 부작용에 대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회와 행정부가 한곳에 있지 않으면 의견 불일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의회와 행정부,사법부,언론 등 민주사회를 이끌어 가는 '핵(힘)'들은 한곳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도 분할을 강하게 만류하는 이유에 대해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며 "첫째는 과도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고,둘째는 시간 낭비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경우 행정부처를 본과 베를린으로 분할한 뒤 매년 공무원들의 출장에 따른 교통비와 체류비로만 1000만~1200만유로(약 174억~208억원)가 지출되고 있다. 또 분할된 행정부처를 베를린으로 통합하는 데만 50억유로(약 8조7350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지난 3일 인천공항 귀빈실에서 가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독일은 통일 이후 베를린과 본으로 행정수도가 나뉘면서 좋은 경험은 하나도 없고 나쁜 경험들만 있었다"며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행정부처 분할을)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도 분할로 엄청난 국가적 비효율과 비용 낭비가 초래됐다"며 "독일 국민도 지금은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수도 분할로 엄청난 비용이 낭비되고 있지만 이런 비용의 문제 역시 국가적 손실 차원에서 보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의회와 행정부가 한곳에 있지 않으면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수도 분할이 장기적으로 국가의 지속적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수도 분할이 국토의 균형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도 헛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쪽으로의 '쏠림현상'이 나타나 다른 한쪽은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의 예를 들어 "특정 부처가 다른 도시로 옮기게 되면 모든 부처가 대통령이 있는 곳으로 옮기고 싶어할 수밖에 없고,이러다 보니 나중에는 핵심 부처와 인력은 '베를린'으로 모이고 크게 중요하지 않은 행정부처들만 '본'에 남는 상황이 일어났다"며 수도 분할의 명분으로 삼는 지역 균형 발전도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이런 현상 때문에 본이 '베를린의 미끄럼틀'로 전락했다고 비유했다.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핵심 부처들은 베를린에 남고 그렇지 않은 부처들은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본으로 나가 떨어졌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장관이 베를린으로 가면 차관이 따라가게 되고,다른 공무원들도 그들을 따라 가고 싶어하기 때문에 모두 본을 떠나 베를린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본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불만이 컸다고 털어놨다. "원래 본에 가족과 함께 살았던 사람은 행복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본에서 일해야 한다면 그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다"고 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의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정치적 논리로 행정수도 이전이 추진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크게 웃으며 "한국의 상황은 한국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독일 역시 통일 이후 정치논리에 의해 수도가 분리됐고,이제는 이를 통합하려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답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말로 대신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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